1 메이지 유신 150년 카운트다운 사업
메이지 유신이란, 에도 막부 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국가를 수립한 정치・사회적 대변혁 과정을 일컫는 말로, 사쓰마번은 그 원동력이 되었다.
※사쓰마번(薩摩藩): 현재 가고시마현의 옛 명칭
사쓰마번은 1862년 요코하마에서 발생한 나마무기(生麦) 사건을 발단으로 그 이듬해에 발발한 사쓰에이전쟁(薩英戦争)을 겪으며 서양의 군사력 및 과학기술의 위력과 존왕양이 의 곤란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후 사쓰마번은 서양문명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한편 에 도막부 타도를 주도하여, 1868년에 '메이지'라는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었다.
2018년은 메이지 유신으로부터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가고시마시에서는 이를 기념해, 2012년부터 2018년까지의 기간 동안 '메이지 유신 150년 카운트다운 사업'으로서, 메이지 유신이 있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사쓰마번 의 족적을 되돌아보는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한다.
2 메이지 유신까지의 연표
사쓰마번의 주요 사건 | 세계의 주요 사건 | |
---|---|---|
1862년 | 나마무기 사건(요코하마) | 런던 만국박람회(영국) |
1863년 | 사쓰에이전쟁 |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미국) |
1864년 | 가이세이죠(開成所: 도쿄대학의 전신)의 창설 | 태평천국의 난 종결(중국) |
1865년 | 사쓰마번 영국으로 유학생 파견 | 남북전쟁 종결(미국) |
1866년 | 삿초동맹 체결, 슈세이칸 기계공장 완성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
1867년 | 가고시마 방적소 조업 개시 가고시마 방적소 기사관(영국인 기사들을 위한 숙소) 완성 |
파리 만국박람회(프랑스) |
1868년 | 메이지 유신 |
3 사쓰마의 위인
-
사이고 다카모리(西郷 隆盛) 1827년~1877년
가고시마의 시타카지야마치(下加治屋町)에서 태어났다. 하급무사였으나 사쓰마번의 번 주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눈에 들어 등용되었다. 두 차례 귀양살이를 겪은 후 1864년 가고 시마에 돌아와 금문의 변에서 활약했다. 그 후에도 삿초동맹의 성립과 보신(戊辰)전쟁을 주도했다. 가고시마를 대표하는 위인의 한 명.
-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 利通) 1830년~1878년
고라이초(高麗町)에서 태어났으나 이후 시타카지야마치로 옮긴다. 시마즈 히사미쓰의 신 뢰를 얻어 사쓰에이전쟁 후 영국과의 교섭 책임자가 되었다. 그 후 사쓰마번 전체를 움직 여 막부 타도 운동을 추진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메이지 정부의 내무대신으로서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진력했다. 사이고 다카모리, 기도 다카요시와 함께 유신 삼걸의 한 명
-
고마쓰 다테와키(小松 帯刀) 1835년~1870년
20세 때 고마쓰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쓰마번의 가로(家老: 번주 를 도와 번의 정무를 집행하는 중신)를 맡았고, 이후 성주가 부재중에 집무를 대행하는 조 다이가로가 되었다.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 등의 활동을 지원하며 번을 통합 하는 한편, 삿초동맹의 체결과 대정봉환 시에는 번의 대표로 활약했다. 그러나 뜻을 다 펼 치지 못한 채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덴쇼인 아쓰히메(天璋院 篤姫) 1835년~1883년
시마즈 가문의 분가인 이마이즈미 시마즈가에서 태어났으나,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양녀 로 들어가 이후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정실 부인이 되었다. 막부 말의 혼란기에 에도성의 오오쿠(大奥: 쇼군의 처첩, 생모, 자녀 및 시녀들이 거처하던 곳)를 관리했다. 1868년에 보신전쟁이 일어나자 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의 정실부인과 함께 도쿠가 와 가문의 존속을 위해 진력했다.
-
시마즈 나리아키라 1809년~1858년
시마즈가의 제 27대 당주 시마즈 나리오키의 장남으로 에도의 저택에서 태어났다. 1851년 번주로 취임하자마자 번정을 개혁하고 서양 문명을 도입하는 한편, 슈세이칸 사 업(集成館事業: 일본 최초의 서양식 산업군)을 일으켜 이소 지역에 반사로와 용광로를 제 작하는 등 부국강병을 추진했다. 신분과 출신을 불문하고 우수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등용 했다. 그러나 49세의 젊은 나이로 급사했다.